파란색의 단색화로 유명한 이브 클랭은 1928년 4월 28일에 프랑스의 니스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화가였지만 그는 미술에 관심이 전혀 없었기에 어려서부터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신비주의자가 쓴 책을 읽으며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연금술에서 받은 영향은 이후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그는 미술에 관심이 없었지만 유도에 관심이 많아 일본에 머물며 검은 띠를 땄고 이후 유도 강사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1952-1953년 동안 일본에 살면서 유도 4단을 취득했으며 1954년에는 유도에 관련된 서적을 출간할 정도로 유도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지내다가 1955년에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1940년대부터 그림을 시작하며 1950년대에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브 클랭은 미술 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와 함께 누보 레알리즘운동에 참여하여 행위예술을 발전시켰으며 팝아트와 미니멀 아트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누보 레알리즘은 196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미술사조로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에 대한 반발로 '현실로의 복귀'를 주창하며 새로운 방법론을 추구했던 사조입니다. 누보레알리즘은 '어떠한 논쟁적 의도도 없이 사회학적 현실을 기록한다'로 정의하며 표현주의적, 사회적 사실주의를 배제하고 비개성적으로 주제를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브 클랭은 인터내셔널 클랭블루로 이름 지은 자신만의 파란색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50년에 열린 개인전에서 단색 회화를 처음 선보였지만 자신의 그림을 인테리어 장식 정도로만 이해하는 관객들로부터 충격을 받아 이후 파란색만을 고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에게 푸른색은 순수하고 무한하며 無에 근접한 색이었습니다. 1957년 니스의 하늘색을 본떴다고 하는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를 고안하여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1959년 강연에서 자신의 단색 회화가 색상에 대한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몰개성화하여 형이상학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푸른색은 IKB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내었으며 짙은 울드라마린 색을 보여줍니다.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는 화학자들과 함께 개발되어 젖거나 마른 상태에서도 동일한 밝기와 농도를 보여주는데요. 이러한 색을 만들기 위해 합성수지에 건조한 안료를 섞어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주요 작품중 하나인 '청색 시대의 인체 측정학'은 퍼포먼스로 붓 대신 나체의 여성 모델을 사용하여 인체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입니다. 이때 배경 음악인 '모노톤의 심포니'는 20분 동안 이어지고 20분간의 침묵으로 연결되는 곡입니다. 이 퍼포먼스는 나체에 파란 페인트를 칠한 모델들이 종이에 몸을 찍으며 완성되는데요. 종이에 찍힌 몸의 흔적은 추상화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작품 '허공으로의 도약'은 포토몽타주로 제작된 사진 작품으로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봤을 법한 장면, 2층 높이에서 자신의 몸을 허공에 던지는 사진 한 장으로 여러 가지 상상을 해 볼 수 있는데요. 두 팔을 크게 벌리고 허공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장면, 주변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이 사진을 제작하기 위해 유도 도장의 수련생들이 방수포를 들고 밑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사진 한 장은 이브 클랭에 의해 발행된 '일요일'이라는 신문에 단 하루만 게재되었습니다.
1958년 파리의 이리스 클레르 화랑에서 열린 전시 '허공(The Void)'는 화랑의 모든 가구들을 치우고 벽을 흰색으로 칠한 텅 빈 전시장에 관람객을 초대하여 푸른색 칵테일을 제공했습니다. 이를 마신 사람들이 푸른색 소변을 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독특한 의도로 진행된 그의 전시는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화제가 되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브 클랭은 기존의 미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도전과 시도를 통해 미술의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퍼포먼스의 시작이었던 그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34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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