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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Andy Warhol, 1928~1987)

by shstory 2023. 2. 25.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은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1928년 이민자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앤드루 워홀라 주니어로 작품활동을 하며 앤디워홀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14세에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홀로 앤디와 두 형을 키웠습니다.

 

그는 카네기 공과대학에 들어가 상업예술을 전공하였고 1949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보그(VOGUE)나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잡지 광고, 일러스트로 활동하며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광고뿐만 아니라 쇼윈도 디스플레이, 문구, 책 표지, 앨범 커버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캠벨 수프 캔이나 코카콜라 병과 같이 대량생산되어 유명한 상품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상품들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대량생산하여 팝아트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앤디워홀의 독특한 표현방식을 실크스크린을 사용한 것으로, 실크스크린은 단순한 형태와 명료한 색감으로 다양으로 인쇄할 수 있는 판화의 한 종류입니다. 기계적인 반복을 위해 사용한 실크스크린의 사용은 앤디워홀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중립적인 태도를 통해 비개성적으로 표현하여 대중성을 드러내었고, 이를 사용하여 단순 명쾌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실수와 미디어의 이미지들을 흐릿하게 만드는 방식을 이용하여 대중문화의 소비성과 대중성, 획일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정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예술작품에 대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유일무이성을 부정하며 모두를 위한 예술을 지향하였고 상업적인 이미지를 순수예술의 형식으로 드러냄으로써 상업미술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기계이기를 원한다."

 

1963년에는 이스트 47번가로 작업실을 옮기며, 작품들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기 위해 팩토리(The Factory)라는 스튜디오를 세우고 이곳에서 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의뢰받은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팩토리는 말 그대로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그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제 작가가 직접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지시를 받은 이른바 예술노동자라 불리는 조수들이 작품을 대신 제작하는 시스템이 시작되었던 것이죠.

 

팩토리는 작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자 배우, 가수, 화가, 모델 등 지금으로 치면 인플루언서가 드나드는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통해 워홀은 아이디어를 얻고 인맥을 쌓았고 일종의 사교적 공간으로 이용되던 팩토리를 통해 그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앤디워홀로부터 시작된 팝아트는 당시 미국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은 자본주의가 실현되던 시기였습니다. 대량생산된 상품이 등장하고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비틀스 음악과 같은 대중음악이 유행하고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모두가 코카콜라를 마시며 같은 문화를 공유했습니다.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그려진 수프깡통, 코카콜라를 그린 그림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GreenCoca_cola Boottles, 1962, warholfoundation

1968년에는 팩토리를 드나들던 한 여성에 의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와야 했습니다. 이 여성은 워홀에게 앙심을 품고 세 발의 총알을 쏘았는데요. 이후 앤디워홀을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후유증을 앓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출입이 자유로웠던 팩토리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죽음에 대해 작업을 이어가며 해골 이미지 연작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Marilyn Monroe, 1967, warholfoundation

앤디워홀 하면 떠오르는 뮤즈가 있습니다. 바로 에디 세즈윅인데요. 그녀와 앤디워홀의 스토리는 팩토리 걸이라는 영화로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 메릴린 먼로가 죽음을 맞이한 그즈음 앤디워홀을 에디 세즈윅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에게서 메릴린 먼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팩토리 걸이자 당대 아이콘으로서 에디 세즈윅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AndyWarhol, Screen Test_Edie Sedwick, 1965, warholfoundation

소비사회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작품으로 소비사회의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한 앤디워홀은 예술가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고정된 인식에서 벗어나 영화, 광고,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로 영역을 확장하여 아티스트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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